도서명: 웃는 남자(L’homme qui rit: The Man Who Laughs)
글쓴이: 빅토르 위고(Victor Marie-Hugo)
출판사: 더클래식
하교할 때 지나치는 버스 정류장에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광고가 붙어 있다. 흥미가 생겨 검색해 봤다가 가격을 보고 조용히 포기했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이 작품은, 비록 뮤지컬은 못볼지언정 최소한 원작 소설이라도 읽어 보자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웃는 남자>의 제목은 많이 들어 봤지만, 읽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 특유의 문학적 특징인 장황한 서두와 필요 이상으로 긴 배경 설명에 지레 겁먹은 탓이다. <웃는 남자> 또한 이러한 특징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꾹 참고 읽으면 사실은 뒷부분의 사건 전개에서 내용 이해를 도와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랜은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형의 웃는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이 기이한 웃는 얼굴로 그윈플랜은 돈을 번다. 이런 그윈플랜의 전부는 연인 데아다.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로 인해 그윈플랜의 얼굴에 신경쓰지 않고 그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데아는 그윈플랜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혼의 안식처나 다름없다. 작중에서 위기가 닥쳐오고 그윈플랜이 혼란과 갈등에 휩싸일 때마다 그를 붙들어 주는 건 데아다. 데아 또한 아기일 적 눈밭에서 얼어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옷을 벗어 자신을 감싸주고 눈밭을 헤쳐나간 그윈플랜을 천사라고 생각한다.
<웃는 남자>의 내용은 작중에 등장하는 극 ‘정복된 카오스’를 통해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정복된 카오스’는 그윈플랜과 데아, 그리고 어린 둘을 거둬 준 철학자 우르수스와 충직한 늑대 호모가 등장하는 극이다. 곰(우르수스)과 늑대(호모)에게 공격받는 인간(그윈플랜)을 천사(데아)가 구원해 준다는 내용인데, 곰과 늑대는 그윈플랜이 맞닥뜨리는 두 가지 역경을 나타낸다. 하나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타락한 면모도 지니고 있는 여공작 조시안의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그윈플랜이 사실은 귀족 클랜찰리 남작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후자에 의해 그윈플랜은 평생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뻔하지만 데아를 생각하며 갈등을 털어내게 된다. 이처럼 그윈플랜이 데아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그녀에게 무척 많이 기대는 듯한 묘사가 많이 나왔다.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가 자신의 최고의 역작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확실히 아직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품에 깊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면 책의 후반부에 있는 작품 해설과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 요약문이었다. 해설에는 콤프라치코스가 작가 빅토르 위고가 만들어낸 가상의 단체라고 하는데, 콤프라치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어린이 인신매매단이며 뒷표지의 요약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또 요약문에서는 그윈플랜이 마치 억지로 자신의 웃는 얼굴과 살아간다는 듯한 묘사가 있는데, 물론 작중에서도 그윈플랜은 웃되 웃는 것이 아니라던가 데아에게 자신은 너와 달리 매우 못생겼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 말고는 그윈플랜이 자신의 웃는 얼굴을 저주했다던가 하는 묘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윈플랜은 자신의 얼굴이 평범하거나 잘생겼더라면 이렇게 얼굴로 돈을 벌어 데아를 먹여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기괴한 웃는 얼굴에 감사하는 묘사까지 나온다.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책을 출판했는지가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