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Emotion, mode d’emploi: Les utiliser de maniere positive)

도서명: 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Emotion, mode d’emploi: Les utiliser de maniere positive)
글쓴이: 크리스텔 프티콜랭(Christel Petitcollin)
출판사: 북투더바이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방법을 배운다. 화내는 사람은 성격이 더러운 사람이 되고, 우는 사람은 울보, 두려워하는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 ‘감정적이다’ 라는 말은 이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뚜렷한 감정을 지니고 가끔씩은 그에 따라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는 감성 대신 이성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경향이 크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회사 상사에게, 자꾸 살살 비위를 긁는 동료나 후배에게, 우리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 이라는 낙인이 찍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단지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가려질 뿐이다. 그리고 영원한 망각,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언젠가는 그 감정이 열 배, 스무 배로 늘어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감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꾹꾹 억누르며 참아 왔던 게 전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글쓴이는 <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글쓴이에게 기쁨은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원천이고, 유일하게 잘못된 분노는 자신을 향한 분노이며, 슬픔은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감정은 단순히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닌 삶의 내비게이션이자 동력이며 안전장치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정을 관리하는 것을 단지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감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을 느낄 권리를 자신에게 돌려줘야 한다. 감정을 느끼는 데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수반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감정을 느낄 권리를 갖고 있다. 감정은 인간 본성의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습득하게 된 ‘학습된 감정’ 들을 놓아 버리고 우리의 ‘타고난 감정’ 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도 모두에게, 특히 자기 자신에게 이롭다. 그것이 글쓴이 프티콜랭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나도 언젠가부터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보다 참고 쌓아 두었다가 결국엔 터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끼어든 것 같다. 감정은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웃는 남자(L’homme qui rit)

도서명: 웃는 남자(L’homme qui rit: The Man Who Laughs)
글쓴이: 빅토르 위고(Victor Marie-Hugo)
출판사: 더클래식

하교할 때 지나치는 버스 정류장에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광고가 붙어 있다. 흥미가 생겨 검색해 봤다가 가격을 보고 조용히 포기했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이 작품은, 비록 뮤지컬은 못볼지언정 최소한 원작 소설이라도 읽어 보자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웃는 남자>의 제목은 많이 들어 봤지만, 읽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 특유의 문학적 특징인 장황한 서두와 필요 이상으로 긴 배경 설명에 지레 겁먹은 탓이다. <웃는 남자> 또한 이러한 특징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꾹 참고 읽으면 사실은 뒷부분의 사건 전개에서 내용 이해를 도와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랜은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형의 웃는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이 기이한 웃는 얼굴로 그윈플랜은 돈을 번다. 이런 그윈플랜의 전부는 연인 데아다.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로 인해 그윈플랜의 얼굴에 신경쓰지 않고 그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데아는 그윈플랜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혼의 안식처나 다름없다. 작중에서 위기가 닥쳐오고 그윈플랜이 혼란과 갈등에 휩싸일 때마다 그를 붙들어 주는 건 데아다. 데아 또한 아기일 적 눈밭에서 얼어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옷을 벗어 자신을 감싸주고 눈밭을 헤쳐나간 그윈플랜을 천사라고 생각한다.

<웃는 남자>의 내용은 작중에 등장하는 극 ‘정복된 카오스’를 통해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정복된 카오스’는 그윈플랜과 데아, 그리고 어린 둘을 거둬 준 철학자 우르수스와 충직한 늑대 호모가 등장하는 극이다. 곰(우르수스)과 늑대(호모)에게 공격받는 인간(그윈플랜)을 천사(데아)가 구원해 준다는 내용인데, 곰과 늑대는 그윈플랜이 맞닥뜨리는 두 가지 역경을 나타낸다. 하나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타락한 면모도 지니고 있는 여공작 조시안의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그윈플랜이 사실은 귀족 클랜찰리 남작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후자에 의해 그윈플랜은 평생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뻔하지만 데아를 생각하며 갈등을 털어내게 된다. 이처럼 그윈플랜이 데아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그녀에게 무척 많이 기대는 듯한 묘사가 많이 나왔다.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가 자신의 최고의 역작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확실히 아직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품에 깊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면 책의 후반부에 있는 작품 해설과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 요약문이었다. 해설에는 콤프라치코스가 작가 빅토르 위고가 만들어낸 가상의 단체라고 하는데, 콤프라치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어린이 인신매매단이며 뒷표지의 요약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또 요약문에서는 그윈플랜이 마치 억지로 자신의 웃는 얼굴과 살아간다는 듯한 묘사가 있는데, 물론 작중에서도 그윈플랜은 웃되 웃는 것이 아니라던가 데아에게 자신은 너와 달리 매우 못생겼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 말고는 그윈플랜이 자신의 웃는 얼굴을 저주했다던가 하는 묘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윈플랜은 자신의 얼굴이 평범하거나 잘생겼더라면 이렇게 얼굴로 돈을 벌어 데아를 먹여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기괴한 웃는 얼굴에 감사하는 묘사까지 나온다.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책을 출판했는지가 아쉬운 부분이다.

잠(Le sixième sommeil)

도서명: 잠(Le sixième sommeil)
글쓴이: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출판사: 열린책들

쪽잠이라는 우승 비결을 보유한 항해사 아버지와 유명한 신경생리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크 클라인은 어렸을 때부터 잠에 대한 흥미를 보였고, 수면을 통해 뛰어난 학습 성과를 보이며 어머니 카롤린을 따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수면 6단계 에 진입하려던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고 피실험자가 사망하자, 이에 카롤린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던 어느 날 자크의 꿈 속에 20년 후의 자신이 나타나 카롤린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가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자크는 일명 ‘꿈의 부족’ 세노이족과 조우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꿈의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얻게 된다. 세월이 흘러 파리로 돌아온 자크는 수면 6단계에 진압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나간다. 겨우 다시 만난 카롤린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자크는 마침내 솜누스 인코그니투스에 도달하고 과거의 자신이 꾼 꿈 속으로 돌아가 20년 전의 자신에게 카롤린을 구하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 설명을 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수면의 단계는 총 여섯 단계가 있다. 0단계는 입면, 1단계는 아주 얕은 잠, 2단계는 얕은 잠, 3단계는 깊은 잠, 4단계는 아주 깊은 잠, 그리고 5단계는 역설수면이다. 1단계에서는 몸의 긴장이 풀리고, 2단계에서는 말소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3단계에서는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온몸이 이완되며 호흡이 느려진다. 4단계에서부터 꿈이 시작되는데, 이 단계에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성장을 돕는 물질이 생성되며, 낮에 배운 기억을 저장하는 것도 이 단계이다. 그리고 역설수면이라고도 불리우는 5단계에 도달하면 몸이 극도로 이완되는 반면에 뇌는 가장 활발해지는 역설적인 상태가 된다. 이때 우리는 더 건강해지며, 거짓을 잊고 중요한 사실들을 선별해 기억한다.

이번에도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수면 6단계 솜누스 인코그니투스는 수면보다는 죽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시각화된 뇌를 볼 수 있으며, 뉴런을 비틀어 과거의 꿈 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상상력의 집합체란 말인가! 솜누스 인코그니투스에서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모두를 용서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으며, 다만 무의식 저편 깊숙한 곳에 숨겨 두고는 용서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자각했을 때 한 사람이 느낄 그 충격이란!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은 함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잘 느낄 수 있다. 약물로 인위적인 죽음을 만들어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솜누스 인코그니투스인 것이다. 이는 목숨을 내건 도전만이 진정한 지혜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요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이 차지하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개중 몇몇-또는 다수-은 공부나 일 등이 잠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며 밤을 새우곤 한다. 대한민국 시민 중 하루 적절 수면 시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이러한 수면 부족에 수반되는 불면증, 기면증, 몽유병 등의 수면 질환이 점점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할수록 우리는 수면시간을 쪼개 해야 할 일을 끝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