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실험 생중계(The revealers)

도서명: 왕따 실험 생중계(The revealers)
글쓴이: 덕 빌헬름(Doug Wilhelm)
출판사: 우리교육

줄거리

말만 하면 저도 모르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러셀 트레이너. 러셀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오후 음료수를 사다가 무서운 선배 리치 터거와 마주하게 된다. 리치는 러셀에게 러셀이 세워둔 자전거가 자신의 길을 막았다고 시비를 걸었고, 러셀을 이상한 이야기만 주절거리다 황급히 도망친다. 그러나 며칠 후, 결국 러셀은 같은 길목에서 리치를 만나 한 대 얻어맞는다. 그 후로 러셀은 계속하여 자신을 주시하는 리치를 보게 된다. 할 수 없이 러셀은 전교 왕따이자 공룡에 빠져 사는 엘리엇 게케위츠와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피할 방법을 찾던 둘은 하와이에서 전학을 와 여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카탈리나 아론스와도 만난다. 셋은 그들을 괴롭히는 소위 “포식자” 들의 의도가 궁금해 실험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학교 통신망에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그러자 예상 외로 전교생들이 그들에게 본인의 사연을 알려온다. 이런 셋이 못마땅한 여자아이들의 우두머리, 베서니 드미어는 거짓 이야기를 제보한 뒤 허위사실 유포로 셋을 고소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러셀과 엘리엇, 카탈리나는 왕따 실험을 주제로 박람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십대 학생들의 특성에 대해 다시한번 실감했다. 이유 없이 타인을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 당연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당연해져가고 이싿. 또한, 형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문조사와 이야기 모집에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응햇단 점도 신기했다. 아마 학교를 다니면서 상처받았던 일들,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을 품고 있다가 익명으로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 터져 나오듯 이야기가 넘쳐난 것 같다. 그만큼 학생들이 묻어두고, 혼자만 아파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감

사실상 에 실린 학교폭력 내용들은 다 조금씩 강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대놓고 폭력이 아닌, 얍삽한 방법이 더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간질 등의 방법 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의 학교들도 단순한 홈페이지의 범위를 벗어난 다재다능 통신망을 갖춘다면 학교폭력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완전한 익명으로 이야기들을 제보하고, 설문조사와 수치들로 통계를 내는 등의 행동들로 말이다. 각자 자신의 묵혀왔던 이야기와 의견들을 풀어내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면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야기 속 카탈리나가 따돌림 받는 이유가 잘 납득이 안 간다. 러셀의 엄마의 생각대로라면 베서니가 외적인 질투와 불안감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친구들은 다 본인의 외모에 자신이 없고 자만하지 않다. 이 말뜻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자존감이 낮다는 뜻도 된다. 이 사실도 영미문학을 읽을 때 드는 이질감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왕따 실험 생중계>를 읽으며 매우 몰입해 잇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내용설정이 주목을 끌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도 어서 학교폭력의 강력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난설헌

도서명: 난설헌
글쓴이: 최문희
출판사: 다산책방

줄거리

문장가 가문의 딸, 초희는 빼어난 외모와 자태를 자랑한다. 초희는 놀고먹는 선비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보다 유식하고 도도한 초희를 맘에 들어하지 않고, 시어머니 솜씨는 아름다운 초희의 외모를 시기해 구박한다. 그 틈새에 껴서 고생하던 초희는 소헌과 제헌을 낳지만, 둘 다 얼니 나이에 아파 죽는다. 한편, 성립은 초희의 옛 하녀 금실이 운영하는 기방을 다니고 초희는 그것을 몸소 느끼며 마음 아파한다. 초희가 몸살을 심하게 앓던 와중 금실은 김성립의 아이를 낳고 그 집에서 살게 된다. 아직 아이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데다가 몸살에 금실까지 와 초희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초희는 세상을 떠난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조선시대 여자들의 시집살이 생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되었다. 전에 한 번 춘향적을 읽은 적이 있으나 단편소설로 읽으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에 워낙에 남녀 차별이 심한 줄은 알았으나 남자는 자유롭게 기방에 다니고 여자는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난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조선에서는 혼례를 치룰 때 여자의 옷이 수없이 많이 껴입어야 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여름엔 더워서 어떡할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소감

사실 을 다 읽고 나서 후기를 보고 나서야 난설헌이 허균의 누나라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때 언뜻 배운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매치가 잘 안됐던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라고만 나와 있어서 ’옛날엔 수명이 짧았다니까,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런 슬프고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는 이제 알았다. 중간중간 허난설헌이 초희에서 그미로 바뀌어 조금씩 헷갈릴 때도 있었다. 갑자기 그미가 튀어나와서 누구지? 했던 기억도 난다.

초희가 결혼하기 전부터 초희를 좋아해왔던 최순치라는 선배가 있다. 그 선비도 초희만 그리워하며 자기 부인에게 소홀히 대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부인은 초희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생 같이 살 남편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아파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고, 그러면 악순환이 지속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억누를 수가 없구나 느끼면서 내 주위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너무 힘든 삶을 산 허난설헌을, 역사적 위인으로써가 아닌 여자 대 여자로서 존경하고 위로하고 싶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

도서명: 미 비포 유(Me Before You)
글쓴이: 조조 모예스(Jojo Moyes)
출판사: 살림

줄거리

일자리를 찾던 여자 루이자 클라크는 트레이너 가족에게 고용되었다. 그녀의 일은 사지마비환자 윌을 6개월동안 간병하는 것이다. 사고 이전 완벽한 삶을 살았던 윌은 현재 그의 처지를 몹시 싫어한다. 간병 초반에 루이자는 매사에 사나운 윌과 별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조금식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윌은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마리는 부모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준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루이자는 잠시 방황하지만 곧 어떻게든 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윌의 간병일로 인해 남자친구와 싸운 루이자는 자신이 윌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주어진 6개월의 시간이 열흘 남았을 무렵, 둘은 여행을 떠난다. 윌은 루이자를 사랑하지만 죽기로 한 자신의 결심은 확고하다고 고백하고 루이자는 충격을 받아 사직서를 낸다. 하지만 윌의 부탁으로 루이자는 죽기 전 순간까지 윌의 옆에 있는다. 결국 윌은 스위스의 다그니터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사지마비환자의 생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세상에 하반신이나 혹은 상체 일부까지 마비가 되는 환자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긍정적인 관점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냥 마비가 되고 끝이 아니라 자율신경 반사이상(Aytonomic Dysneflexia, AD) 같은 일이 찾아오거나 별거 아닌 폐렴에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이 나에게는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소감(감상 및 비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윌이 너무 이기적이야’였다. 자신도 루이자를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심지어 오로지 루이자 때문에 눈을 뜰 때도 있다고까지 했으면서 죽겠다고 하는 것은 루이자에게 너무 아프고 슬플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기 자신이 싫었으면 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윌은 사고 이전에 정말 “완벽”한 삶을 살아왔고 그 인생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를 계기로 안락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 에 나온 바에 따르면, 낙태를 하는 간호사들도 그 죄책감이 어마어마하다는데 직접 안락사를 시키는 의사는 그 감정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안락사가 잘못된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판단을 거친다면 본인의 의지대로 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락사 또한 이기적인 방법이 아닐까. 아무리 너무 불행하다 한들 안락사를 택하면 주변 사람들은 배로 고통받지 않을까? 사람들이 안락사는 최후의 방법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