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전트(Divergent)

도서명: 다이버전트(Divergent)
글쓴이: 베로니카 로스(Veronica Roth)
출판사: 은행나무

줄거리

주인공 트리스는 5개의 분파로 나눠져 있는 국가에서 생활한다. 에브니게이션 분파에서 이타적인 부모님, 오빠와 지내지만 본인은 에브니게이션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던 차에, 스스로 분파를 선택하기 하루 전 보는 적성검사에서 다이버전트라는 결과를 받는다. 다이버전트란 모든 분파의 특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그 사회에서 다이버전트는 지도자들의 위협이 되므로 살해당한다. 그렇기에 트리스는 부모님이 속해 계신 에브니게이션과 비겁함을 비난하는 용감한 돈트리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돈트리스에 들어간다. 자신이 다이버전트라는 사실을 숨기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승부욕 강한 다른 이적생들 사이에서 트리스는 무사히 돈트리스에 입문한다. 한편, 무지를 비난하는 지식인들 에러다이트와 일부 돈트리스 지도자들이 정부기관을 담당하는 에브니게이션에 반대해서 돈트리스 군대에게 몽유 상태로 명령만 따르는 약을 주입해 에브니게이션들을 학살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고회로가 자유로워 약이 듣지 않는 트리스를 포함한 일부 다이버전트들-트리스의 남자친구인 돈트리스 지도교관 포 등의 사람들-과 트리스의 오빠, 포의 아빠는 혈청이 작동 중인 제어실에 들어가서 시스템을 멈추고 쑥대밭이 된 도시를 떠난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책이 끝난 후 부록으로 다샛 개의 분파의 이름에 대한 어원이 소개되었다. 그냥 지어진 이름이 아닌, 각각의 분파 특성의 의미가 담겨있는 단어에 대한 설명과 옮긴이의 해설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본문 내용중에 “나는 비겁함을 잔인함과 맞바꿨다. 연약함을 사나움과 맞바꿨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내용은 이야기 배경의 분파 체계를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무리 똑똑하고, 멋있고, 유명한 사람이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고, 한 가지 나쁜 점이 없어지면 다른 나쁜 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을 알f게 되었다.

소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라서 더욱 흥미롭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더 복잡하고 심오한 것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인간의 이중성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무지 말이다. 뼛속까지 에브니게이션같던 트리스의 오빠가 에러다이트를 선택해 가족들을 떠난 상황이나, 강인한 돈트리스 지도교관 포가 사실은 잔인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것 같은 일 등이 그 예시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또한, 돈트리스 입문 시험 중 트리스의 공포 일부도 인상깊었다. 그 공포 시뮬레이션에서 트리스는 자신이 가족을 죽여야 하는, 안 그러면 자신이 총살당하는 가상현실에 처한다. 그때 트리스는 이타적인 마음과 용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나도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타적인 행동에 의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고, 용기를 내어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다이버전트>는 정말 내 취향에 걸맞는 소설이다. 교훈적이고 의미있는 말들이 이야기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왕따 실험 생중계(The revealers)

도서명: 왕따 실험 생중계(The revealers)
글쓴이: 덕 빌헬름(Doug Wilhelm)
출판사: 우리교육

줄거리

말만 하면 저도 모르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러셀 트레이너. 러셀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오후 음료수를 사다가 무서운 선배 리치 터거와 마주하게 된다. 리치는 러셀에게 러셀이 세워둔 자전거가 자신의 길을 막았다고 시비를 걸었고, 러셀을 이상한 이야기만 주절거리다 황급히 도망친다. 그러나 며칠 후, 결국 러셀은 같은 길목에서 리치를 만나 한 대 얻어맞는다. 그 후로 러셀은 계속하여 자신을 주시하는 리치를 보게 된다. 할 수 없이 러셀은 전교 왕따이자 공룡에 빠져 사는 엘리엇 게케위츠와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피할 방법을 찾던 둘은 하와이에서 전학을 와 여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카탈리나 아론스와도 만난다. 셋은 그들을 괴롭히는 소위 “포식자” 들의 의도가 궁금해 실험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학교 통신망에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그러자 예상 외로 전교생들이 그들에게 본인의 사연을 알려온다. 이런 셋이 못마땅한 여자아이들의 우두머리, 베서니 드미어는 거짓 이야기를 제보한 뒤 허위사실 유포로 셋을 고소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러셀과 엘리엇, 카탈리나는 왕따 실험을 주제로 박람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십대 학생들의 특성에 대해 다시한번 실감했다. 이유 없이 타인을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 당연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당연해져가고 이싿. 또한, 형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문조사와 이야기 모집에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응햇단 점도 신기했다. 아마 학교를 다니면서 상처받았던 일들,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을 품고 있다가 익명으로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 터져 나오듯 이야기가 넘쳐난 것 같다. 그만큼 학생들이 묻어두고, 혼자만 아파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감

사실상 에 실린 학교폭력 내용들은 다 조금씩 강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대놓고 폭력이 아닌, 얍삽한 방법이 더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간질 등의 방법 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의 학교들도 단순한 홈페이지의 범위를 벗어난 다재다능 통신망을 갖춘다면 학교폭력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완전한 익명으로 이야기들을 제보하고, 설문조사와 수치들로 통계를 내는 등의 행동들로 말이다. 각자 자신의 묵혀왔던 이야기와 의견들을 풀어내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면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야기 속 카탈리나가 따돌림 받는 이유가 잘 납득이 안 간다. 러셀의 엄마의 생각대로라면 베서니가 외적인 질투와 불안감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친구들은 다 본인의 외모에 자신이 없고 자만하지 않다. 이 말뜻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자존감이 낮다는 뜻도 된다. 이 사실도 영미문학을 읽을 때 드는 이질감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왕따 실험 생중계>를 읽으며 매우 몰입해 잇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내용설정이 주목을 끌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도 어서 학교폭력의 강력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난설헌

도서명: 난설헌
글쓴이: 최문희
출판사: 다산책방

줄거리

문장가 가문의 딸, 초희는 빼어난 외모와 자태를 자랑한다. 초희는 놀고먹는 선비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보다 유식하고 도도한 초희를 맘에 들어하지 않고, 시어머니 솜씨는 아름다운 초희의 외모를 시기해 구박한다. 그 틈새에 껴서 고생하던 초희는 소헌과 제헌을 낳지만, 둘 다 얼니 나이에 아파 죽는다. 한편, 성립은 초희의 옛 하녀 금실이 운영하는 기방을 다니고 초희는 그것을 몸소 느끼며 마음 아파한다. 초희가 몸살을 심하게 앓던 와중 금실은 김성립의 아이를 낳고 그 집에서 살게 된다. 아직 아이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데다가 몸살에 금실까지 와 초희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초희는 세상을 떠난다.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조선시대 여자들의 시집살이 생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되었다. 전에 한 번 춘향적을 읽은 적이 있으나 단편소설로 읽으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에 워낙에 남녀 차별이 심한 줄은 알았으나 남자는 자유롭게 기방에 다니고 여자는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난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조선에서는 혼례를 치룰 때 여자의 옷이 수없이 많이 껴입어야 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여름엔 더워서 어떡할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소감

사실 을 다 읽고 나서 후기를 보고 나서야 난설헌이 허균의 누나라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때 언뜻 배운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매치가 잘 안됐던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라고만 나와 있어서 ’옛날엔 수명이 짧았다니까,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런 슬프고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는 이제 알았다. 중간중간 허난설헌이 초희에서 그미로 바뀌어 조금씩 헷갈릴 때도 있었다. 갑자기 그미가 튀어나와서 누구지? 했던 기억도 난다.

초희가 결혼하기 전부터 초희를 좋아해왔던 최순치라는 선배가 있다. 그 선비도 초희만 그리워하며 자기 부인에게 소홀히 대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부인은 초희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생 같이 살 남편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아파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고, 그러면 악순환이 지속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만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억누를 수가 없구나 느끼면서 내 주위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너무 힘든 삶을 산 허난설헌을, 역사적 위인으로써가 아닌 여자 대 여자로서 존경하고 위로하고 싶다.